예 림

최초의 퀼트는 추위를 피하기 위한 방한 용품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장식적인 디자인을 생각할 여유가 없었죠. 정해진 패턴도 디자인도 없고, 그저 커다란 이불을 만들어야 하는 까닭에 조각 천을 가능한 여러 장 서로 연결 시켜야 했습니다. 아마 남아있는 조각 형태 그대로 불규칙하게 이어 붙여 이불 모양을 만들었겠죠.
나중에 '크레이지 퀼트'라 불린 이런 형태의 퀼트는 이주민들이 모국으로부터 가져 온 소중한 천을 이어 만든 '작품'일거란 생각이 들어요. 디자인을 즐길 여유는 없었지만, 이어 붙인 누비이불은 추위와 굶주림에 지친 타지 생활에 활력 과 휴식을 주는 친근한 생활 용품이 되어주었어요.

가족끼리 모여 하루를 정리하는 시간에, 여인 네들끼리 고향이야기를 주고받던 시간에 퀼트는 함께 했을 테니까요. 신대륙 미국 땅에서는 그들이 유럽에서 가져 온 퀼트 패티코트와 더불어 퀼트 문화가 유산으로 계승되어 그들 생활 속에 깊숙이 뿌리를 내리게 되었지요. 이런 시간을 경험하면서 퀼트는 유럽 의 생활 배경과는 전혀 다른 미국이라는 신세계에서 새로운 패턴을 하나, 둘씩 만들어 가기 시작 했어요. 두 대륙의 문화가 퀼트를 통해 아름다운 조화를 이루게 된 거죠.

그 후 퀼트는 미국 역사와 더불어 발전해 가게 됩니다. 그러니까 아메리칸 퀼트의 발전사를 아 는 것은 바로 미국 생활의 역사를 아는 것이고 미국인들의 이야기를 더듬어 채취해 가는 것이라 할 수 있겠죠. 역사적으로 아메리칸 퀼트를 분류해 보면 몇 단계로 나누어집니다. 먼저, 단지 필요성에 의해 퀼 트가 만들어졌던 식민지 시대, 그 다음, 인도와 영국에서 수입된 프린트와 스타일이 주종을 이루 던 독립전쟁 시대, 그 후, 서부로의 이동이 시작되면서 미국적 특징이 생겨나던 1850년경의 서부 개척 시대와 남북전쟁 시대를 이야기 할 수 있습니다.

이후 1870년경을 절정으로 한 독립 100년 시대는 산업혁명의 진행과 함께 퀼트가 가장 많이 만들어졌던 시기이며, 1930년대 경제공황 시대 는 20세기에 접어들면서 한때 쇠퇴했던 퀼트가 다시 부활하게 된 시기라고 분류할 수 있을 것입니다.

현재요? 현재는 잊혀져 갈 뻔했던 퀼트의 가치가 재인식되면서 새로운 감각으로 창작활동 이 활발히 진행되고 있는 현대 퀼트의 시대라 할 수 있어요. 자, 이만하면 퀼트의 역사가 곧 미국의 생활 역사라 한 말이 거짓이 아님을 알 수 있겠죠? 퀼트는 유럽에서도 오래 전부터 만들어왔지만 미국처럼 모든 사람들이 평균 5∼6장씩 퀼트를 가지고 있을 만큼 보급되지는 않았대요.

한 땀 한 땀 손으로 이어 붙이는 퀼트, 그 속에는 절제와 애국 심, 자비와 신앙을 존중했던 초창기 미국인들의 정신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던 거예요. 그 정신이 이어져 오늘날 독특하고 아름다운 디자인의 퀼트 문화가 꽃피게 된 것은 결코 우연한 일이 아니 란 얘기죠. 그러면 미국인들과 함께 미국에 자리잡기 시작한 초기의 퀼트가 어떻게 발달해 가게 되었는지 이야기를 계속해 볼까요?